“글로벌 표준시장서 인증비즈니스 도전”
취임 1년 맞아 흑자전환 이상진 표준협회 회장
“정부기관 유관단체에 만족할 게 아니라 스스로 생존 가능한 조직으로 바꿔 나갈 생각입니다.“
오는 21일 취임 1년을 맞는 이상진 한국표준협회 회장은 최고경영자(CEO)답게 이 같은 목표를 밝혔다. 그는 표준협회 수장으로 온 후 28년여의 공무원 경력이 무색할 정도로 CEO 역량을 발휘하며 조직을 바꿔 나갔고 이 모습에 직원들마저 혀를 내둘렀다. 행정고시 32회인 이 회장은 1989년 정보통신부를 시작으로 산업통상자원부 등을 거치며 28년간 공직에 몸담고 있다가 지난해부터 표준협회를 이끌었다. 이 회장은 취임 첫해에 느슨했던 조직에 수익 개념을 도입하고 적자기업을 1년 만에 턴어라운드시켰다. 이제는 이익을 내는 데 만족하지 않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플랫폼 비즈니스 조직으로 바꿔 나가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
표준협회는 1962년 산업표준화와 품질경영 등을 빠르게 도입하기 위해 만든 조직으로, 산업통상자원부 유관단체다. 공적 성격을 띤 경영기관이기 때문에 크게 매출이 변동하거나 이익 모멘텀을 창출하는 경우도 드물었다. 이 때문에 2015년부터는 3년간 성장이 정체되더니 급기야 2017년에는 12년 만에 처음으로 영업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지난해 3월 취임하자마자 이런 상황을 보고받고 경영 정상화에 돌입했다.
이 회장은 “처음에 협회에 와 보니 보고서에 숫자는 없고 글자만 있었다“ 며 “모든 보고서에는 전년 대비, 전월 대비 데이터를 첨부하도록 해 부서 단위 손익 개념을 도입했다“ 고 술회했다. 이른바 이상진식 ‘데이터 경영법’이다. 보고서에 글자로 된 부분은 다 지우고 매달 숫자·표·그래프로만 이뤄진 보고서를 놓고 회의했다. 그러다 보니 매출에 비해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부서들은 자연스럽게 비용 절감에 들어갔다. 무턱대고 사람을 더 뽑아 달라는 부서들도 숫자를 보고 입을 다물기 시작했다. 이 회장은 부서 단위로 매출 목표를 주고 부서 융합형 프로젝트를 발굴해 부서 간 협업도 이끌어냈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나니 성적표가 확 달라졌다. 2017년 매출액이 996억원에 불과하던 표준협회는 지난해 1100억원을 달성해 1년 만에 외형이 10.5%나 커졌다. 무엇보다 2017년 31억원의 영업적자를 봤던 표준협회가 지난해에는 7억원 흑자를 내면서 느슨했던 조직에도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회장은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작년은 경영 정상화의 해에 불과하고 이제부터 시작” 이라며 “올해 조직 구성원들이 생존 가능한 전문역량을 확보하도록 도와주고, 조직도 글로벌 성장 모멘텀을 찾는 등 할 일이 많다”고 운을 뗐다. 올해의 포부를 이야기하는 그의 눈빛이 반짝였다.
표준협회는 산업표준화 인증은 물론이고 품질경영과 관련한 조사·연구개발(R&D) 등 업무를 담당하다 보니 각종 교육사업을 다양하게 한다. 기업에서 필요로하는 공개 교육뿐만 아니라 현장지도 교육이나 자격 인증, 직무 연수 관련 교육까지 매년 약 450개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 회장은 “우리가 이렇게 다양한 교육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우리 직원들 중 직접 강의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게 맹점”이라며 “외부 강사만 활용할 게 아니라 각자 전문 분야를 가지고 그 분야에 강사가 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그는 취임 직후부터 300여 명에 달하는 모든 직원과 1대1 개별 면담을 진행했다. 지난해 4월부터 시작한 면담이 3월 현재 221명째. 한 사람당 40~50분씩 시간을 할애해 전 직원 중 70% 이상을 만나본 것이다. 면담 결과 그는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조직이 느슨한 줄 알았는데 오히려 직원들은 불안감이 많더라는 것.
그는 “직원들과 1대1 면담을 하면 할수록 구성원들조차 조직의 미래, 자신의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회장이 뭔가 새로운 걸 해줬으면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더라 고 말했다.
이 회장은 그때부터 자신이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단 주니어 직원들에게는 커리어 플랜을 제시하고, 시니어 직원들에게는 역량을 더 강화해주기로 했다. 40세 이하 직원 중 상위 20%만을 따로 뽑아 회장이 직접 멘토링하는 조직도 만들었다. 협회를 이끌어 나갈 파워엘리트를 구성한 것이다. 실 부장(센터장)급 인력들은 부하 직원들에 대한 코칭 부문도 인사고과에 반영하기로 했다. 직원들의 전문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자율주행차, 드론, 스마트시티 등 10대 신산업 분야에 각각 담당자를 배치하고 각 산업 표준활동에 전문가로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조직의 기를 살려주는 것과 동시에 새 먹거리를 찾는 것도 그의 업무다. 이 회장은 이를 위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할 계획”이라며 “주 52시간 근무제는 교육비즈니스에 큰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4500여 개 회원사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표준협회 입장에서 지금까지는 좋은 콘텐츠를 제공해 공급하는 역할을 해왔는데, 앞으로는 누구라도 좋은 콘텐츠를 갖고 있으면 협회에 자유롭게 제공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얘기다. 이를 통해 콘텐츠 제공자들도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하는 비즈니스 포털을 만들겠다는 게 이 회장의 목표다. 특히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직장인들의 교육 수요가 높아지고 회사 차원에서도 직무능력 강화에 대한 요구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중국을 필두로 하는 글로벌 표준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이 회장은 “과거에는 미국이나 유럽 중심의 국제표준화기구가 큰 역할을 했지만 중국이 국제표준을 장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중국이 연구개발 큰손이 되면서 거기서 나온 결과를 중심으로 표준 시장을 바꿔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베이징에 사무소를 두고 있는 표준협회도 이에 뒤지지 않기 위해 지난해 해외 유관기관과 전략적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등 글로벌 시장에 발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중국품질인증원과 MOU를 체결하고 글로벌 최대 온라인 쇼핑업체 알리바바와 협업, 베트남 스마트공장 인증도 추진 중이다.
그는 “중국에서는 이미 블록체인을 상업화해 돈을 벌고 있는 기업이 나오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사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가 뒤처져 있다”며 “하지만 품질 측면에서는 중국에도 아직 비즈니스 기회가 많다”고 밝혔다.
또 이 회장은 “중국 베트남 등 글로벌시장에서 한국표준협회의 인증 비즈니스기회가 많을 것으로 보고 이 시장을 집중 공략해볼 생각”이라며 “특히 자율주행차등의 도입으로 자동차 산업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국내 자동차 품질경영 시스템인증 사업도 해외 진출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