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위기·AI Agent의 시대 - 브랜드가 경쟁력이 되는 이유
KS-PBI 자문위원장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코빗 석학교수) 박성호
최근 기업 경영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불확실성'이다. 경기 침체와 지정학적 갈등, 생성형 AI의 확산까지 기업을 둘러싼 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들이 진정 두려워하는 것은 변화 그 자체보다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는 '예상 밖의 위기'일지도 모른다. 과거 기업의 위기는 공장의 화재나 제품 결함처럼 물리적인 문제였다. 오늘날 위기는 데이터센터에서 시작되고 SNS를 통해 증폭되며 소비자의 스마트폰을 거쳐 순식간에 전 세계로 확산된다. 기술이 기업의 경쟁력을 높여준 만큼 위기의 전파 속도 또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 최근 잇따른 개인정보 유출 사고나 서비스 변경을 둘러싼 논란은 이러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이제 소비자는 기업의 해명을 기다리지 않는다. 실시간으로 평가하고, 공유하며, 행동한다. 주목해야 할 점은 같은 실수를 하더라도 기업마다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어떤 기업은 한 번의 위기로 오랜 기간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지만, 어떤 기업은 "이번에는 실수했지만 다시 기회를 주자"는 소비자의 반응을 얻는다.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 답은 브랜드에 있다.
브랜드는 흔히 로고나 광고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지만, 현대 마케팅에서 브랜드는 소비자의 머릿속에 축적된 신뢰와 경험의 총합이다. 브랜드 자산(Brand Equity)은 기업이 장기간 축적한 가장 중요한 무형자산 가운데 하나이며, 강력한 브랜드는 소비자의 충성도를 높일 뿐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는 기업을 보호하는 완충장치 역할을 한다. 실제로 이러한 효과는 다양한 실증 연구를 통해 반복적으로 확인되어 왔다. 브랜드의 가치는 평상시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위기가 발생하는 순간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 된다. 보험이 사고가 났을 때 비로소 그 가치를 증명하듯, 브랜드 역시 위기 상황에서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 더욱이 정보가 넘쳐나거나 반대로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일수록 브랜드의 역할은 더욱 커진다. 소비자는 모든 정보를 직접 검증하기보다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를 선택한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가격보다 신뢰가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되는 이유다.
이러한 불확실성과 위기에 더해 기업들은 이제 또 하나의 거대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바로 AI 에이전트의 시대다. 생성형 AI는 더 이상 질문에 답하는 수준을 넘어 소비자를 대신해 검색하고, 비교하고, 구매를 결정하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 McKinsey와 Gartner 등은 향후 수년 내 상당수의 소비자 의사결정과 구매 과정에 AI 에이전트가 개입할 것으로 전망한다. AI 에이전트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하나는 소비자 개인을 위해 일하는 AI다. ChatGPT, Gemini, Claude와 같은 AI기업들은 개인의 관심사와 소비 패턴을 학습해 일종의 '디지털 비서' 역할을 수행하는 서비스를 속속 소개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기업이 구축하는 AI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마존의 쇼핑 AI 'Rufus'이다. 소비자는 아마존 플랫폼 안에서 Rufus에게 제품을 추천받고 비교하며 구매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국내에서도 네이버는 플러스스토어를 중심으로 생성형 AI 기반 쇼핑 에이전트를 도입하며 AI 쇼핑 경험을 확대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소비자가 자신의 개인 AI 대신 기업이 제공하는 AI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소비자는 기본적으로 자신을 위해 일하는 개인 AI를 더 신뢰할 가능성이 높다. 개인 AI는 자신의 예산과 취향, 건강 정보, 구매 이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소비자 편에서 의사결정을 돕는다. 반면 기업의 AI는 자사 제품과 서비스를 우선적으로 추천할 것이라는 의심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그렇다면 소비자는 언제 기업의 AI를 선택할까? 여기서 다시 브랜드가 등장한다. 브랜드는 AI 시대에도 위험을 줄이기 위한 가장 강력한 신뢰의 신호가 된다. 개인정보를 누구에게 맡길 것인지, 어떤 AI의 추천을 신뢰할 것인지, 어떤 플랫폼에서 결제할 것인지 모두 결국 신뢰의 문제다. AI의 성능은 시간이 지날수록 빠르게 평준화될 가능성이 있지만, 소비자의 신뢰는 단기간에 복제하기 어렵다.
애플이 좋은 사례다. 애플은 최근 Apple Intelligence를 발표하면서 기술 자체보다 개인정보 보호를 핵심 가치로 내세웠다. 온디바이스 AI와 Private Cloud Compute를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많은 소비자가 애플의 AI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단순히 기술 때문만이 아니다. 오랜 기간 축적된 브랜드 신뢰가 새로운 AI 서비스에 대한 신뢰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AI 시대의 경쟁은 알고리즘만의 경쟁이 아니다. 신뢰를 얼마나 축적했는가의 경쟁이다. 브랜딩은 더 이상 마케팅 부서의 업무가 아니다. 정보보안과 고객경험, ESG, 조직문화, AI 전략까지 모두 브랜드를 구성하는 요소가 되었다. 소비자는 광고보다 기업의 행동을 기억하고, 슬로건보다 위기 상황에서의 대응을 평가한다. 브랜드는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경영의 결과물인 셈이다.
불확실성이 일상이 된 시대다. 예기치 못한 위기는 언제든 찾아오고 AI는 우리가 일하고 소비하는 방식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기술은 따라잡힐 수 있고 가격 경쟁력도 언젠가는 약화될 수 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축적된 신뢰는 쉽게 모방할 수 없다. 그래서 오늘날 브랜딩은 더 이상 좋으면 하는 것이 아니다. 튼튼한 브랜드는 기업의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보험이며, 위기관리의 기반이고, AI 시대에도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위한 가장 중요한 경쟁우위이다. 기술은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다. 하지만 소비자가 궁극적으로 선택하는 기업은 결국 믿을 수 있는 기업이다. 그리고 그 믿음의 다른 이름이 바로 브랜드다.







